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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글 모음 since 1994

현실 피하기

by 금퐁당 작은 연못 2020.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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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영화이야기를 해보자. 영화 뷰티풀 마인드는 정신분열증 환자인 천재 수학자가 나중에 노벨 경제학상까지 수상한다는 내용이다. ‘식스 센스처럼 현실과 비현실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구분하지 않고 이야기를 전개하다가 영화가 중반을 지난 이후에 비로소 관객들이 그가 정신분열증 환자임을 알게 된다.

 

영화 전문가들이 높게 평가하는 파이터 클럽에서도 주인공(에드워드 노턴)이 자신이 만든 가상의 인물(브래드 피트)과 대화를 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들 영화에서 등장한 정신분열증이나 다중인격 증상을 가진 사람들은 가상의 인물이나 사물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정신적으로 혼란에 빠진다. 여기서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자.

 

어설프게 가상의 인물 한두 명을 만드는 수준의 환자가 아니라 가상의 인물들과 공간을 완벽하게 만드는 제대로 미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혼란에 빠지지 않기 때문에 정상인과 다름없이 행동하고 그가 만든 가상의 공간 속에서 편안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정신병과 상관없이 사람들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사막에 혼자 살도록 내버려 두어도 만족하면서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지옥에 사는 것 같은데 당사자들은 즐겁다고 끝까지 우긴다. 우기는데 믿어 주어야지 어떻게 하겠는가?

 

인간의 정신세계는 정말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다. 이 세상살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들 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마음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면 지옥에서도 재미있게 지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힘든 일상을 살아가는 99%가 어려운 일을 즐겨가면서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피할 수 없는 어려운 일들이 한 두 개도 아니고, 무엇보다 가족을 비롯한 관계 속에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나 혼자만 즐길 수 있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지옥을 천국으로 바꾸는 정신병 환자가 된다면 모든 것을 즐길 수 있을지 모른다.

 

수직적인 계급사회 속에서 지친 한국인들이 의지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종교이다. 한국인의 50% 이상이 종교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종교를 통해서 현실에서 추구하기 어려운 것들을 염원하고, 종교인들끼리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음으로써 방사형 그물망의 한 곳에 매달려 있는 자신과 다른 자아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99%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마음을 가지거나 종교로부터 편안하고 행복해 진다면 정말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99%는 현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어렵다. 한 순간 편안해 질지 모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주는 문제에 다시 직면할 수밖에 없다. 마음의 수양도 현실이 어느 정도 뒷받침 해 주어야 가능하다.

 

대부분의 99%는 현실을 피할 수 없다. 현실을 극복하거나 피할 수 있는 사람들 보고 99%라고 하지 않는다. 고통을 주면 고통을 그대로 느끼는 것이 99%이다. 이들에게 다른 차원의 삶을 살라는 것은 너무나 잔인한 요구이다. 99%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을 피하는 법이 아니라 현실을 바꾸는 것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생각을 가지고 99%가 살아가면 상류층이 좋아한다. 자기 자신을 수양하고 발전시키는 차원에서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만 부당하고 불합리한 상황까지 즐길 필요는 없다. 현실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지에 의해서 바꾸어 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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