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래 전 글 모음 since 1994

예의와 인정

by 금퐁당 작은 연못 2020. 2. 7.
728x90

패거리 문화에 적응하려면 적과 동지를 잘 구분해야 한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폭력적인 만화 프로그램을 많이 본 5살짜리 남자 아이들은 이렇게 질문한다. “아빠, 쟤는 착한 놈이야? 나쁜 놈이야?” 패거리 문화의 수준은 5살짜리 남자 애의 정신 연령과 같다. 애들은 귀여운 맛이라도 있지만 어른들이 이런 수준이면 끔찍하다.


조지 오웰이 지은 소설 ‘1984’에 보면 전체주의의 지배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Two Minutes Hate’라는 의식을 치르게 한다. 비판해야 할 대상을 선정해 놓고 사람들로 하여금 동시에 2분 동안 큰 소리로 욕설을 퍼붓도록 한다. 적을 만들어 놓고 내부 조직을 단합시키는 방법이다. 학연이나 지연 같은 패거리에 근거하여 나쁜 놈과 좋은 놈을 구분하는 문화는 전체주의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전체주의에서 이성과 논리는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어른들은 너는 좋다, 혹은 너는 나쁘다라고 판단하는 것을 좋아한다. 지식인들도 일반인들과 기본인식 수준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배운 티를 약간 낸다. 그래서 지식인들은 너는 정말 나쁘다. 내가 자료를 가지고 증명해 보이겠다.’ 라고 말한다. 지식인들이 패거리 싸움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을 붙인다.


많은 사람들이 독재자에 대해서 나쁜 놈이라고 비난한다. 그런데 독재자를 키운 것은 엄밀히 말하면 우리 사회체제이다. 지식인들은 이 부분을 직시했어야 했다.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패거리 문화에서는 상대를 극단적으로 짓밟으면서 내부의 단결을 도모하는 사람들이 경쟁력을 가지고 패거리의 대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독재자는 패거리 문화가 지배하는 우리의 시스템이 키웠다.


독재자들의 성장 과정을 보면 안 믿을 지도 모르겠지만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예의가 바른 아이들이었다. 선배나 상관에게 저항하고 말썽을 부렸다면 그들은 조직이나 군대에서 절대 높은 자리에 올라 갈 수 없다. 그들은 한국의 주고받는 문화에 익숙해지면서 패거리 내부의 질서에도 적응해 간다. 선배를 깍듯이 모시고 통솔력을 발휘하여 후배를 이끄는 능력도 보여 준다. 여러 조직을 대표하는 보스가 되어 마침내 국가의 권력도 잡게 된다.


패거리 문화의 착한 놈, 나쁜 놈구분에 익숙해 져 있었기에 그들이 판단하기에 나쁜 놈들은 가차 없이 응징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람들은 그들을 보고 독재자라고 손가락질한다. 그들은 잠시 놀랐을 지도 모른다. 착하고 성실하게 공부 잘하고 선배와 스승을 잘 모시던 나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나쁜 독재자라는 소리를 듣다니? 하지만 그들의 주변에 있는 패거리들이 여전히 그들을 지지하는 것을 보고 안심한다. 게다가 그들의 집권 이후에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자신과 별 차이가 없는 것을 보고 더욱 의기양양해 있을 지도 모른다.


비리에 연루되어 검찰조사를 받는 사람들에 대한 유력 인사들의 평가는 의외인 경우가 많다. 그들은 “xxx는 아주 예의 바른 젊은이였는데 안타깝다라고 말한다. 패거리 문화가 껍질을 하나 벗으면 동문회 문화가 된다. 뇌물을 받아 검찰조사를 받는 국회의원들은 동문후배가 인사차 찾아야 건네준 돈을 받았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예의를 갖추었고, 동문회 문화대로 행동했을 뿐인데 구속이라니 억울할 만도 할 것이다.


한국인의 감성을 대표하는 말이 인정이다. 사전에는 남을 동정하는 따뜻한 마음이라고 되어 있다. 옛날에 보리 고개를 넘길 때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는 사람도 많았다. 다들 가난하지만 그 중에서도 사정이 더 어려운 이웃에게 먹을거리를 나누어 주던 것이 우리네 인정의 참모습이지 않았을까 한다. 그런데 이 인정도 변질되어 패거리 사이에서만 유효한 것 같다. 패거리 내의 범법자에게 따뜻한 인정으로 감싸준다든지 아니면 어렵게 사는 것과 전혀 상관없는 상류층 사이에서 서로 협조하고 나누어 먹는 것을 인정으로 여기기도 하는 것 같다.


한국인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예의와 인정이 독재자를 키우고 비리를 일으키는 근본원인이 되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모순의 원인은 사회 구조에서 찾아야 한다. 패거리 문화 혹은 동문회 문화가 우리의 장점을 단점으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우리 동문 최고!’, ‘선후배끼리 밀어주고 끌어주자라는 동문회 문화를 의심하고 적응하지 못하는 인재들은 싹도 나기 전에 속아진다.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한 사람이 가진 예의와 인정의 양()도 정해져 있다고 봐야 한다. 윗사람에게 지나치게 예를 갖추는 사람은 아랫사람에게 그만큼 혹은 그 이상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자기가 속한 패거리에 대해 예의와 인정을 과도하게 베풀면서 환한 미소를 짓는 사람은 다른 패거리들에게 악마로 변신할 수도 있다. 예의와 인정을 패거리를 위해 쓸 것인지 아니면 일반 서민을 위해 쓸 것인지는 그 사회의 성격에 따라 결정된다.


(단상)

선진국도 동문회가 활성화되어 있고 동문끼리 서로 상부상조 한다며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같은 학교를 나온 것을 알면 괜히 즐거워지는 것이 사람의 심리다. 그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정도의 차이인 것이다. 한국은 그 병폐가 심각한 수준이다. 오죽하면 서울대 망국론이 등장하겠는가? ‘하바드 망국론’, ‘옥스포드 망국론은 들어본 적은 없다. 대신 그 나라 국민들은 하바드와 옥스퍼드 대학을 대단히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728x90

'오래 전 글 모음 since 1994'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닫힌 사회와 적극적인 저항  (0) 2020.02.07
현실 피하기  (0) 2020.02.07
한 놈만 패라  (0) 2020.02.07
우(愚)한 민중은 없다  (0) 2020.02.07
이익추구는 아름답다  (0) 2020.02.0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