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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글 모음 since 1994

이익추구는 아름답다

by 금퐁당 작은 연못 2020.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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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행동을 지배하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첫 째는 생존을 위한 자기보호이고, 두 번째는 이익추구이다. 사람들도 생명체인 이상 자신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것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행동한다. 전쟁이나 공포 혹은 굶주림에 사람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 쉬운 예로 몸이 아플 때 사람들은 자신을 되돌아본다. 아프기 전에 그토록 집착했던 모든 일들이 갑자기 허망해지고 자신의 생명과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몸이 완쾌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허망해 보였던 것들과 다시 씨름을 한다.

 

2008년 봄부터 시작된 촛불집회는 상상이상의 결과를 초래했다. MB 정부는 한미FTA 협정을 염두에 두고 별 생각없이 미국과의 소고기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행위를 결정짓는 첫 번째 요인이 생존이라는 것을 망각했다. 햄릿에 나오는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대사는 생존을 위한 자기보호를 잘 표현한 문구이다. 더 잘 사는 것보다 절실한 것은 생존의 문제이다.

 

1차적인 생존에 대해 걱정이 없는 사람들은 이익추구를 위해 행동한다. 일부 성인(聖人)들은 재화나 명예에 집착하지 말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와 명예 같은 개인의 이익추구를 거부하기 어렵다. 부와 명예를 가지는 것에 실패했을 때 성인(聖人)들이 지은 책을 읽으면서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는 실로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우주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 무소유와 자유를 외치는 사람들도 관점에 따라서 무소유와 자유라는 것을 소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자유를 찾은 사람은 이 세상 누구보다 더 큰 이익을 실현했다고 보아도 된다. 재화, 명예, 권력을 쫓으면서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극히 드물지만 이것들을 버림으로써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결국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이 극대화되는 방향으로 행동하고 있을 뿐이다. 상류층은 자신의 위치에서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고 더 많은 것들을 차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99%도 예외일 수 없다. 같은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이기에 일반 서민이 우연한 기회에 상류층으로 올라간다면 지금의 상류층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을 할 것이다. 두 계층의 차이점은 사회체제가 만든 게임에서 승리한 자와 패배한 자의 차이이다.

 

이익추구의 방법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지만 이익추구 자체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인간적인 모습이다. 지금부터 약 10년 전에 구성애씨가 아우성(아름다운 우리들의 성)’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해 그 동안 금기 시 되었던 성()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밖으로 끌어내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었던 적이 있다. 그 이후 아우성은 우리에게 친숙하게 되었다. 이익추구에 대한 욕구도 아우성과 마찬가지로 전혀 창피하지 않은 인간의 본능에 기초한 아름다운 모습일 뿐이다.

 

동문회나 지역주의도 이익실현을 위한 수단이다. 법이 공정하지 못하여 능력이 아니라 패거리 문화에 의해 이익의 방향이 결정되는 사회현실에서 사람들이 의지할 수 있는 것들이 동문회와 지역주의이다. 현재의 사회체제가 변하지 않고 유지된다면 이 두 가지보다 실질적으로 사람들의 이익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본다.

 

지역주의에 휩쓸려 투표하는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았으면 한다. 99%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지역주의뿐인데 그들을 비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특히 지식인들이 지역주의의 지배를 받는 99%를 비난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우리 사회체제에서 패배자라고 할 수 있는 일반 서민들에게 국민수준이 떨어진다라던가 아니면 ()한 민중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가면서 비난한다.

 

지식인들은 마치 자신들은 개인의 이익보다 사회의 정의를 우선시하는 별종인 것처럼 행동하곤 한다. 지역주의는 맹렬히 비난하면서 자신이 속한 힘 꽤나 쓰는 동문회는 뒤로 숨긴다. 이러한 현상은 지식인들이 20살 이전까지 체제에 의해 길들여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체제가 만든 시나리오에 의해 행동하는 지식인들이기 때문에 이들을 무조건 비난하는 것도 타당하지 않은 것 같다. 더구나 동문회는 성역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이러한 비난을 들으면 억울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국가나 조직을 위해서 행동한다는 상류층이나 지식인이 아직도 있다면 그는 거짓말쟁이 아니면 사회체제에 의해 세뇌 당한 바보임에 틀림없다. 그들은 조직의 이익이 개인의 이익과 일치하기 때문에 멋있어 보이는 조직을 앞에 내세울 뿐이다. 그런데 개인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고 말하면 폼이 나지 않는 건 사실인 것 같다. 어쨌든 상류층도 지식인도 99%도 모두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속성을 가진 하나의 생명체에 불과하다.

 

높은 곳에서 붕 떠다니던 상류층과 지식인들은 본인들의 내면 깊은 곳에 감추어 져 있던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와야 한다. 아래로 내려오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치장된 껍질을 벗고 자기 자신과 타인 앞에서 솔직해 지기만 하면 된다. 상류층, 지식인, 99%가 가장 낮은 곳에서 만나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고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우리의 정신을 만들 수 있다. 대학입시를 치를 수 있는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인간의 밑바닥에 있는 이익을 추구하려는 욕구가 평등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인간의 관계가 달라진다. 개인의 이익추구는 치부가 아니라 인간의 아름다운 행위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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