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 ‘멀쩡해도 고치는 것이 혁신’이라는 재미있는 말이 있다. 변화만이 살 길이고 모든 것을 개혁하지 않으면 국제사회에서 살기 남기 어렵다는 취지에서 기업가나 공무원이 만들어낸 말이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시스템은 거의 변하지 않고 개혁을 위한 구호만 예나 지금이나 난무하고 있다.
지연, 혈연, 학연이 문제라고 지식인들은 말한다. 이 세 가지 연줄 중에서 혈연은 가족이라는 자연스러운 집단이 기본단위이므로 연줄을 끊을 수 있는 실천을 이끌어내기 위한 문제해결의 시작점으로 적합하지 않다. 반면에 지연과 학연은 사회체제와 문화에 의해 형성된 인공적인 결정체이므로 인공적인 변화 역시 가능하다. 좀 더 자세히 들어다 보면 지연은 학연의 확장된 형태에 불과하다. 결국 학연으로부터 해결책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
지역주의보다는 이슈화 되지 않았지만 학연에 대한 제도적 해결책도 일부 지식인 중심으로 꾸준히 제시되고 있다. ‘서울대 폐지’, ‘대학 평준화’ 등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해결책이 논의의 수준에만 그칠 뿐 실제로 진전되지는 않는다. 기득권을 가진 상류층들이 양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1970년대에 제도적인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는 고등학교의 평준화가 실제로 적용된 적이 있었다. 아이들의 고입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학연에 따른 폐해를 줄이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한 학연은 제도적 보완이후에도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당정치만 도입한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완성되지 않듯이, 학연도 제도적 장치 이전에 의식을 지배하는 문화의 문제로 보고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화가 바뀌면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학연을 만드는 문화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동문회 문화이다. 그런데 이 동문회 문화는 한국인들이 감히 건드려서는 안 될 성역으로 군림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선배, 후배, 우리학교 최고를 외치면서 성장한 어른들에게 동문회는 미우나 고우나 끝까지 사수해야 할 신성불가침한 곳이다. 학연을 해결하려면 당연히 동문회 문화를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했어야 했다. 더구나 동문회 문화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여되어 있기 때문에 전 사회구성원의 참여와 실천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주제이다.
연줄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제시하고 있는 것은 동문회 문화를 인정하는 입장에서 제시하는 탕평책과 개인의 도덕성에 호소하는 것이 전부이다. 탕평책은 18세기말 영정조 시대에 나왔던 해결책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고, 도덕성에 호소하는 것은 해결책을 모르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탕평책은 동문회 문화에 대한 비판이 없을 경우 절대 99%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없다. 오히려 수적으로 많아진 그리고 지역적으로 고르게 분포된 학교출신들이 중요한 권력을 분점 하게 됨으로써 상류층은 만족할지 모르나 동문회 문화는 오히려 강화되고 99%는 법이 아니라 인간관계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불안한 상황이 된다. 더구나 세계와의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가 능력이 아니라 학교나 지역 간의 안배를 우선시해 인재를 등용하겠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18세기적 발상이다.
해방된 지 70년이 지났고 그 동안 수많은 지식인들이 왔다 갔음에도 불구하고 동문회는 논의 대상조차 되지 않고 있다. 진보지식인이나 개혁인사들도 동문회 문화를 감히 건드리지 못한다. 이들이 고의적으로 동문회 비판을 하지 않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고의로 감출 능력이라도 있었으면 유능한 지식인이라고 평가해 주고 싶다. 사람들의 의식과 행동을 지배하는 문화를 고쳐야 사회가 개혁이 된다는 것을 알고 지식인들이 문화를 직시하려고 노력했지만 장고 끝에 나온 것이 ‘패거리 문화’라는 용어를 하나 만든 것이 전부이다.
‘동문회 문화’와 ‘패거리 문화’는 비슷하면서도 큰 차이가 있다. 문제인식에서는 맥을 같이 하지만 비판 대상에서 미묘한 차이가 있다. 동문회 문화를 비판하면 그것을 언급하는 사람도 비판대상에서 빠져 나가기 어렵다. 기회가 되어 동문들과 만났을 때 우리끼리 밀어주고 끌어주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역설해야 한다. 반면에 패거리 문화를 비판하면 비판하는 사람은 도덕적이고 깨끗한데 다른 사람들이 패거리를 만들어 문제가 된다는 입장에 선다. 사람들은 이런 성향을 생래적으로 가지고 있다. 자기 눈에 박혀있는 들보는 보려 하지 않는다.
직장에서도 동문끼리 자주 만나고 서로 도와주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사람들은 직장 동료를 하나의 인격체로 보고 판단하기 이전에 그가 속한 동문회를 먼저 떠올린다. 한 사람이 문제를 일으키면 ‘저 대학 출신들은 왜 저래?’라고 말한다. 같은 대학 출신끼리 서로 밀어 주고 끌어주어 높은 자리를 차지하면 다른 대학 출신들은 ‘자기들끼리 다 해 먹네’라고 생각한다. 이런 문화는 직장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있어서 마이너스 요인이 된다.
동문회는 명문학교뿐만 아니라 비명문인 학교에서도 활성화되어 있다. 소속 학교가 명문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단합을 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동문회 문화에 의해 의식화되어 있다.
지식인들 사이에서 보수, 진보, 좌익, 우익에 대해서는 서로 의견이 분분하지만 동문회 문화에 대해서는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충성을 다한다. 우습게도 동문회 문화의 당연한 귀결인 지역주의와 학연에 대해서는 문제라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답을 못 찾을 수 밖에……
'오래 전 글 모음 since 1994'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愚)한 민중은 없다 (0) | 2020.02.07 |
---|---|
이익추구는 아름답다 (0) | 2020.02.07 |
헌법 위에 동문회 회칙 (0) | 2020.02.07 |
법조인 심판 (0) | 2020.02.07 |
후배에게 존댓말을 (0) | 2020.02.0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