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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에게 존댓말을

by 금퐁당 작은 연못 2020.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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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와 군부정권 100년의 결과 한국 학교는 군대화되었다. 그 결과 청소년들의 중고등학교 시절을 지배하는 주제어는 복종이다. 복종은 계급사회에서 필요한 제1의 덕목이다. 선배에 대한 복종, 선생님에 대한 복종, 학교에 대한 복종, 대학입시에 대한 복종을 이 시기에 학습한다. 식민지 주민에 대한 교육체제가 학교에 그대로 남아있다.

 

엄격한 복종 기간 중에 선배 역할을 수행하여 후배를 엄격하게 다스리는 방법도 체험한다. 능력에 상관없이 단지 나이가 한 살 더 많다는 이유로 후배에게 하느님처럼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능력이 아니라 일단 높은 자리에 먼저 올라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이 시기에 복종하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벌칙과 징계와 공포가 기다린다. 아이들은 중고등학교 6년이라는 복종 기간에 계급사회 전체의 메커니즘을 익힌다.

 

한국어에는 말에도 계급이 있다. 상대를 높여주는 존댓말과 상대를 하대하거나 친한 사이에 사용하는 반말이 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상대방의 말투에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친구 사이의 반말이야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나이가 많거나 높은 계급을 가진 사람들이 어리거나 낮은 계급인 사람들에게 반말을 주로 사용하고 반대로 어리거나 낮은 계급을 가진 사람들은 연장자나 상급자에게 깍듯이 존댓말을 사용해야 하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학교 선후배 관계에서도 말이 상당히 중요하다. 후배가 실수로 선배에게 반말을 사용하면 선배는 후배가 기어오른다고 생각해서 군기잡으러 내려온다. 어릴 때 익힌 이런 습관 때문에 한국은 군기잡는 나라가 되었다. 말이란 생각이나 느낌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말하고 표현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반말을 하면서 후배를 무시하는 선배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선배들은 말부터 막아버린다. 한국인의 수직적 인간관계는 선후배 사이의 반말과 존댓말의 구분된 사용에서 시작된다.

 

반말과 존댓말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는 어떤 사회를 꿈꾸고 만들 것인가라는 철학과 연계된다. 학교 교육에서 배워야 할 단 한 가지의 덕목을 찾으라고 하면 그것은 인간존중이다. 인간을 존중한다는 것은 권력, 지위, 나이, 빈부에 상관없이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이다. 자아가 형성되는 청소년기에 인간을 존중하고 존중 받는 체험을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청소년들은 중학교 교문에 들어서면서부터 인간을 무시하고 무시당하는 체험을 한다.

 

학교 교육이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전인(全人)교육이나 인성(人性)교육이다. 전인교육은 지식이나 기능 따위의 교육에 치우치지 아니하고 인간이 지닌 모든 자질을 조화롭게 발달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을 뜻하고 인성교육은 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자질과 태도 및 품성을 배양시키는 교육을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말 자체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될 수 있는 애매모호한 말들이다. 마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각자의 양심과 도덕성에 호소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 수많은 지식인들의 글처럼 한국의 교육목표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실제로는 전인교육이나 인성교육도 말 뿐이고 대학입시가 전부인 것이 교육의 현 주소이다.

 

발전적인 인간관계를 만들기 위한 교육은 없다고 봐야 한다. 제도권에 있는 어른들과 학부모들은 대학입시 제도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지 수직적 인간관계를 바꾸고자 하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계급에 의한 차별 정도와 대학입시에 쏟는 부모의 열정은 당연히 비례한다. 차별이 줄어들면 자신이 맡은 일을 열심히 하기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수 있는데 어른들은 차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결국 어른들과 상관없이 아이들이 주도가 되어 자발적으로 인간관계를 바꾸는 일을 해야 한다. 어른들이 도와주면 금상첨화! 진보 교육감님 어떻게 안될까요?

 

미래의 인간관계는 현재의 수직적 인간관계에서 서로 낮추는 것이 아닌 서로 높여 주는 수평적 인간관계로 전환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서로 존중해 주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선후배 간에 말을 서로 높여주어야 한다. 후배는 선배들에게 존댓말을 사용하고 있으니까 지금처럼 하면 된다. 문제는 선배가 후배들에게 존댓말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후배 관계는 계급체험의 전형이다. 처음에는 후배였다가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본인도 하느님과 동기동창인 선배가 된다. 그동안 참고 견딘 결과 신으로 대접받는다. 선배가 되면서 새로운 즐거움을 만끽하게 된다. 이제까지 선배들에게 당했던 것을 그대로 후배들에게 되돌려주는 것이다. 이런 선후배 관계를 변화시키려면 한 살이라도 어린 아이들이 먼저 시작해야 한다. 선배의 재미를 아는 어른 같은 아이들은 자신이 획득한 권력을 쉽게 버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선후배 사이의 말투를 바꾸는 좋은 방법 하나를 소개하면, 선배에게 대항하기 보다는 후배에게 베풀어 주는 방법이 좋다. 선배가 자신에게 반말로 말할 때 왜 반말하느냐고 따지지 말고 이제까지 잘 참아 왔듯이 참아야 한다. 괜히 선배들과 문제 일으킬 필요는 없다. 대신 후배들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면 된다. 만약 중학교 1학년이면 1년 동안 참고 기다려야 하지만 중학교 2학년 이상 된 아이들 중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아이들은 당장 후배들에게 존댓말을 사용할 수 있다. 위로부터의 폭풍은 막고 아래쪽을 보호하고 존중해주는 진정한 강자들만이 할 수 있는 멋들어진 역할을 뜻있는 아이들이 먼저 시작해 주어야 한다.

      

학생인권조례에 선배가 후배에게 반말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했으면 한다. 어리고 약한 존재를 존중하고,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체험을 학교에서 해야 한다. 대선공약이 되었으면 한다. 처음에는 어색할 지 모르지만 학습능력이 좋은 아이들은 빨리 금방 규칙을 습득할 것이다. 군대에서 적합한 말투와 인간관계를 중고등학생들에게만 강요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일제와 군사정권이 남긴 유산을 청산할 때도 되었다.

 

말을 바꿈으로써 선후배 관계가 변한다. 비정상적인 패거리 논리에 기초한 선후배 관계는 왜곡된 동문회 문화를 만드는 기본요소이다. 지역의 동문회가 모여서 '우리 학교 최고'를 외치면서 이익을 챙기는 것이 지역주의다. 존댓말을 사용하는 단순한 행위가 지역주의를 없애는 파급효과를 가져오고 결국 사회체제도 바뀌게 된다. 이것이 '나비효과'이다.

      

생각 하나

아이들의 명찰과 학년 표시는 가급적 떼는 것이 좋다. 명찰과 학년 표시는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학년 표시는 계급이라고 할 수 있다. 계급장 붙여 놓고 서로 존댓말 사용하는 것도 우습다. 이름표를 떼기 어렵다면 학년 표시라도 우선적으로 없애야 한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이름표하고 학년표시 없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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