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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위에 동문회 회칙

by 금퐁당 작은 연못 2020.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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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행동양식을 정해 주는 것은 바로 동문회 문화이다.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대부분의 부정부패와 비리사건에 같은 학교 출신의 선후배끼리 서로 밀어주고 끌어 주는 행위가 관여해 있음을 관찰할 수 있다.

 

해결책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자신들에게 동문회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나 커서인지 동문회 문화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없다. 반면 동문회 문화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 지역주의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문제점을 지적한다.

 

196080년대까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경상도의 장기 집권 시 그 지역 출신들의 권력 독점과 횡포를 지역주의의 발단으로 볼 수 있다. 이 지역주의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기점으로 증폭되어 지역 간의 갈등이 고착화되었다. 경상도의 횡포에 대해 살아남으려고 저항하는 전라도의 지역주의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지역주의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해서 충청도에도 지역주의가 만들어 지는 기미가 보인다. 각종 선거 결과를 보면 수도권을 제외하면 지역별로 색깔이 분명하게 구분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지역주의는 지역감정으로 격화되고 집단 정신병에 걸린 사람들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서로 상대방에게 도저히 상종하지 못할 치유 불가능 판정을 내리는 것이다.

 

정신병자를 치료해 주어야 하는 것이 정치권과 지식인들의 역할이었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기껏해야 지역을 안배한 지도자의 공정한 인사를 기대하는 수준의 해결책이 제시된 것이 전부이다. 특히 지식인들은 병적인 사회현상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해 주어야 하는 책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 같다. 모든 정신병에는 원인이 있게 마련이다. 의사가 결과에 대해서 같이 흥분하면 환자를 결코 치료할 수 없다. 동문회 문화를 지역주의의 원인으로 보았더라면 적절한 치료법을 만들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경상도 정권기에 대구의 경북고등학교 위세는 실로 대단했다. 경북고는 한국전쟁 당시 잠시 교명을 대구고로 바꾼 적이 있는데 그 당시의 졸업생을 포함하여 TK라고 불렀다. 일부에서는 대구상고를 TK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그러다가 1981년 행정구역 개편을 이유로 경상북도가 대구직할시와 경상북도로 나누어지면서 TK는 그 의미가 확대되어 대구와 경북 사람 전체를 언급하게 되었다. 동문회 조직과 문화를 의미하던 TK 마피아가 대구 경북의 99% 등 뒤로 숨어 버린 꼴이다.

 

그렇다고 해서 경상북도의 99%TK의 전횡에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 성골인 TK와 초등학교, 중학교 동문이거나 친인척일 경우 어려운 부탁을 해서 문제를 쉽게 해결하거나 이익을 챙기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동문회라는 연결고리를 이용해 경상북도 사람 전체가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경북고등학교의 동문회 회칙은 헌법 위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상도의 지역주의 기반은 동문회 문화를 토대로 하고 있었다.

 

문화는 사람들의 지식과 신념과 행위를 총칭한다. 그래서 한 집단의 사람들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문화에 의해 행위 할 때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동문회 문화는 어려울 때 서로 도와주는 것이 회원들 간의 행동원칙 1 번이다. 그 과정과 결과가 불합리하고 모순적이어도 동문회 문화가 뒷받침해 주는 한 그들은 개의치 않는다.

 

동문회 문화를 비판하지 않았기 때문에 TK 정권 이후에도 닮은꼴의 문제가 계속 발생했다. 경상도의 반대편이라고 할 수 있는 김대중 정부가 들어섰을 때 호남에서도 MK라고 불리는 목포상고와 광주일고의 동문들이 부각되어 서로 밀어주고 끌어 주는 행위를 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그 동안 소외되었던 전라도 사람들을 제 위치에 올려놓는 과정이었다고 변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라도도 경상도와 마찬가지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김영삼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는 경남고와 부산상고로 대표되는 PK가 있어서 그들의 동문회 회칙이 위력을 발휘했다. 혁신정부를 내세우는 노무현 정부조차 정권획득 이후 본인의 모교인 부산상고 출신들을 대거 국가의 요직에 앉혔다. 이렇게 발탁된 부산상고 출신들은 또다시 관련 동문을 발탁하여 피라미드식으로 PK 세력을 확대시키는 형태를 취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가 지역주의이다.

 

생산 활동을 하지 않는 양반들이 당파싸움에만 치중하다가 나라를 빼앗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들이다. 당파싸움의 진원지는 서원이었다. 21세기인 지금도 서원이 곳곳에 있다. 경기서원, 경북서원, 목포서원, 광주서원, 부산서원, 경남서원...... 서원의 존재가 문제가 아니라 밀어주고 끌어주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동문회 문화가 문제이다.

 

동문회 회칙 제11조에 우리의 우정과 선후배의 돈독한 관계가 제3자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라는 문구부터 넣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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