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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글 모음 since 1994

그 아버지에 그 아들

by 금퐁당 작은 연못 2020.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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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부패방지위원회(현재 국가청렴위원회)에서 전국의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결과를 보면 설문대상자의 90% 이상이 한국사회가 부패해 있다고 대답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든 세상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어른들은 아이들이 이런 사회에 잘 적응하기를 바라고 있다. 비록 어른들의 세상이 부패로 가득 차 있지만 그들의 아이들은 사회라는 테두리 속에서 안정적으로 살기를 갈망한다. 어른들은 조직에 저항하고 체제에 저항하던 사람들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 생각하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말한다.

 

아이들의 90% 이상이 불신하는 그 부패의 소용돌이를 향해서 오늘도 아이들은 새벽 별을 보면서 무표정하게 행진하고 있다. 행진할 때마다 그들이 싫어하는 어른들의 모습과 닮아 간다. 어른들을 닮지 않으려면 스무 살 이전에 새로운 인간관계를 체험해야 하지만 아이들은 대학입시 준비 이외에는 신경 쓸 여유가 없다. 어른들이 중고등학교 때 체험했던 것과 거의 같은 인간관계를 아이들이 경험할 뿐이다.

 

일단 대학입학 시험을 치르고 나면 아이들 사이의 계급이 결정된다. 이제 게임 끝이다. 계급이 결정된 이후에 인간관계를 체험하고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어른들 말처럼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그나마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 고민하고 사회의 문제에 대해 토의할 여유가 생긴다. 하지만 주변에는 중고등학교 때의 맑고 투명한 친구들은 사라지고 비슷한 문화와 계급을 가진 막 어른이 된 굳은 머리의 또래들에 의해 둘러싸이게 된다.

 

아이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어른들과 닮아간다는 말일 수 있다. 그래서 닮아간다는 말에 대해 아이들은 심하게 거부감을 가질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 보기 바란다. 좋아하는 가수나 취미활동 같은 것은 어른들도 그들이 아이였을 때 그들의 부모와 달랐기 때문에 차이점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런 것 말고 인간을 보는 관점이나 인간관계에 대해서 차이점을 찾으려 하면 쉽지 않을 것이다.

 

어른들이 만든 세상에 대해 저항을 할 수 있는 지 묻고 싶다. 그럴 시간도 없을 거다. 공부하다 힘들면 이어폰 끼고 노래를 듣거나 아니면 컴퓨터 게임이나 만화를 보는 게 전부일 것이다. 두발이나 복장규제에 대해 저항한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어른들이 보면 재롱떠는 수준에 불과하다. 그 정도 저항은 어른들도 청소년기에 했다. 그들이 가장 혐오하는 모습이 되어간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아들은 아버지를 그대로 닮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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