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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글 모음 since 1994

소중한 것들을 버려라

by 금퐁당 작은 연못 2020.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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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회든지 그 사회를 지배하는 흐름이 존재한다. 비록 그 흐름이 오염되었다 할지라도 그 속에서 우정, 사랑, 행복, 정의, 진실 등 모든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미우나 고우나 흐름에 익숙해지면 적응하는 것이 인간이다.

 

하지만 한국을 지배하는 흐름은 유감스럽게도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 그 흐름은 너무 오래되어 썩고 부패해 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웃음보다 울음소리가 크게 들린다. 이제는 그 오래된 흐름을 버려야 한다.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동문회 문화가 문제를 많이 일으키더라도 사람들은 그 속에서 행복을 찾는다. 담배를 한 번 피기 시작하면 담배가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것처럼 익숙해 진 문화를 버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동문끼리 뭉쳐서 패거리를 만드는 것의 부작용을 실제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다. 하지만 이미 익숙해져 있고 그 속에서 특별한 관계를 사람들이 맺고 있기 때문에 동문회를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지식인들조차 동문회 문화를 감히 건드리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최고대학인 서울대를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용기를 보인 지식인들은 몇 명 있지만 그 자신도 비판의 대상이 되는 동문회 문화는 입 밖으로 꺼내지 조차 못한다.

 

서울대를 비판하는 의도도 본인의 뜻과 상관없이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서울대를 비판하는 사람이 서울대가 아닌 다른 패거리에 속해 있다면 서울대가 독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나누어 먹자는 이야기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패거리 이익을 위해 서울대라는 패거리를 공격하는 패거리 문화의 전형으로 오해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 동문회는 이러한 비판에 대해 별로 흔들리지 않는다. 대학입시를 통해 장원급제를 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데 다른 패거리가 서울대를 비판하면 억울하면 너희도 서울대에 입학해라는 생각을 속으로 할 뿐이다. 이러한 비판은 오히려 그들의 자부심을 더 키워준다.

 

서울대 출신들은 자신들이 잘 뭉치지 않는다고 항변하면서 정말 잘 뭉치는 것은 연세대나 고려대 동문들이라고 한다. 연세대나 고려대가 비정상적일 정도로 눈이 띄게 동문회 문화에 집착하는 것이지 서울대도 분명히 동문회가 가장 활성화된 학교 중의 하나이며 그 동문회의 영향력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이다.

 

서울대 비판이 효과를 가지려면 능력에 상관없이 동문이기 때문에 요직에 끌어주는 문화를 비판하고 그들의 생산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생산성만 높으면 모든 요직을 서울대가 독차지해도 상관없다. 서울대 비판이 나오는 이유는 그들이 높은 자리에서 하는 일이 만만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최고의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비판당하는 수준으로 전락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서울대의 문제는 한국인 모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대학을 비판하기보다는 그 사회를 지배하는 흐름을 비판해야 한다. 서울대를 비판하는 사람도 서울대에 입학했더라면 그들과 꼭 같이 행동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하나의 개체로 태어나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흐름이 정해주는 대로 움직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오래된 흐름을 버리고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일은 내부 개혁과는 차원이 다르다. 오래된 흐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거추장스러운 장식과 가면을 모두 버려야 한다.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조차 버려야 한다. 몸과 마음이 가벼워져야 다른 흐름으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문회를 비판하는 것은 오래된 흐름을 지배하는 동력을 비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버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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