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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글 모음 since 1994

축 '계급사회로의 진입'

by 금퐁당 작은 연못 2020.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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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아이들이 가지는 인간관계는 가족, 친구, 선후배, 선생님 정도이다. 아이들이 맺는 첫 번째 인간관계는 가족이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친구가 생기고 새로운 것을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을 알게 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까지 주변의 도움을 받으며 자라난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인간관계의 틀 안에서 따뜻함을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신체가 급격하게 성장하고 정신적으로도 성숙해 지면서 자아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 동안 생각해 보지 않았던 인간의 삶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나는 누구인가’, ‘인간은 무엇인가’, ‘공부는 왜 하는 가’,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등의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비어있는 유리그릇처럼 쉽게 받아들이고 쉽게 상처 받는다. 파란색 물을 부으면 파란색이 되고 빨간색 물을 부으면 빨간색이 된다. 파란색이 전부이고 빨간색이 이 세상 전부인 것처럼 돌아다니다가 부딪쳐 깨어지기도 한다.

 

중학교 정문에 들어서면서 보호로부터 탈피하여 독립을 해야 하는 단계로 접어든다. 그런데 중학교 정문에 축 입학이 아니라 축 계급사회로의 진입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는 것을 입학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이들은 알 수 있다. 아이들은 이제부터 계급의 매운 맛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빈 유리그릇에 맨 먼저 채워지는 것은 계급에 의한 위계질서이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처음으로 들어보는 신기한 단어가 선배’, ‘후배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 같이 놀았던 한두 살 많은 동네 친구들이 선배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것이다. 같이 놀 때 형이라고 부르기는 했지만 존댓말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중학교에 입학해 보니 선배는 후배에게 말을 놓고 후배는 선배에서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2학년과 3학년들은 어색해 하는 1학년들 앞에서 보란 듯이 익숙하게 선후배 관계가 어떤 것인지 보여 준다. 가급적 2학년과 3학년을 피하고 싶은데 1학년 명찰을 보고 선배들이 , 1학년 이리와 봐라고 부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선생님도 훨씬 더 엄격해 졌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말썽부리는 친구들이 선생님에게 불려가 심하게 혼나는 장면을 자주 보게 되고, 학교 교칙을 따르지 않아 머리가 규정에 맞지 않다든지 복장이 불량하면 선생님에게 혼이 난다. 꾸중들을 때 가만히 있어야지 괜히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면 더 심하게 혼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선생님이나 선배 중 일부는 폭력을 휘두르기까지 한다. 자아에 대한 성찰이나 삶에 대한 의문은 이런 공포 앞에서 자취를 감추고 자신이 직면한 새 질서 앞에서 어떻게 적응할 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같은 반 친구들끼리 잘 지내고 부모님 말씀대로 공부나 열심히 하는 것이 청소년기를 무사히 보낼 수 있는 안전한 방법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 친구 사이의 관계도 초등학교 다닐 때의 그것과 달라진다. 친구 사이에서 서열이 정해지는 것이다. 매달 성적표가 나와서 등수에 따라 서열이 정해진다. 선생님도 서열에 따라 아이들을 차별하는 것이 보인다. 공부 못하는 것이 죄진 것도 아닌데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선생님한테 혼이 나고 기가 죽는다.

 

서열을 정하는 기준이 공부만이 아니다. 친구들 중 일부는 폭력을 휘두른다. 그 친구들은 학교 내에 있는 폭력조직에 가입하면서 배경까지 든든하다. 선후배 관계가 두려울 텐데도 그 친구들은 용하게도 버티는 것 같다. 아이들은 선후배 관계를 잘 이용하면 학교생활이 편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지도 모른다. 조직의 힘을 미리 체험한 아이들이 그들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그들의 폭력을 두려워 하던 공부 잘하고 착한 아이들이 어른이 된 이후 진짜 무서운 조직에 들어가서 가공할 폭력을 휘두를 수도 있다. 인생은 정말 아이러니하다.

 

우리의 아이들이 지금 계급사회에 떨리는 첫 발을 내딛는 것처럼 우리의 부모들도 청소년기에 똑같은 경험을 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이제 시작이야,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지 못하면 지금보다 더한 공포를 경험할 수도 있어라고 충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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