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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글 모음 since 1994

마지막 호랑이의 죽음

by 금퐁당 작은 연못 2020.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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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체제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 선생님이나 학교는 아이들이 수직적인 사회체제에 잘 적응하도록 만드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그들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 그들에게 아이들의 입장을 고려해서 보다 자유롭고 인간적으로 대해 줄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선생님들 중 일부는 예외일 수도 있지만 이들이 학교 조직이 추구하는 방향을 바꿀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학교나 선생님은 고정변수로 봐야 한다.

 

인터넷의 발달로 아이들은 어른들의 모순이나 비리를 이미 잘 알고 있다. 일부 아이들이 사회를 비판하는 것을 보면 지식인들과 수준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다. 지식인들의 수준이 고등학생 수준에서 멈추어서인지 아니면 아이들이 과외를 많이 받아 똑똑해 져서 수준이 올라 간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지만 사회체제 변화를 위한 희망은 버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도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될 성역이 존재한다. 그것은 날카롭게 어른들을 비판하던 아이들의 입을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다물게 만든다. 그 성역은 바로 선후배 관계이다. 선후배 관계에서 정말 놀라운 사실은 아이들이 그 전부터 내려오던 관습에 의해 자발적으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다. 선생님이나 학교가 선후배 관계에 대해서 특별히 말할 필요가 없다. 알아서 아이들이 기는 것이다.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선배는 하느님과 동기동창이라고 말한다. 선배는 신앙이고 하느님과 같이 졸업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관계는 계급에 기초한 완벽한 수직적 관계이다. 선배가 요구하는 어떠한 것도 후배가 거부할 수 없고 후배는 선배가 하는 말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전근대적인 발상이다. 똑똑한 아이들이 선후배 관계 앞에서 갑자기 바보가 되어 버린다.

 

한국의 사회체제를 볼 때 사회구성원 사이의 계급관계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를 분석하는 작업은 정말 중요하다. 서두에서 사회체제는 인간의 관계, 즉 너와 나의 관계가 확대되어 만들어 진다고 주장했다. 단언컨대 한국의 사회체제는 학창시절의 선후배 관계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선후배 관계가 동문회를 만들고, 학교간의 대립 관계를 조장하고, 지역주의로 확대되기도 한다. 하느님과 동기동창 이던 선배가 뇌물을 들고 찾아와 청탁을 하면 후배가 감히 거절하기 어렵다. 이러한 문화가 어우러져 청소년들의 90%이상이 부패되었다고 말하는 한국사회가 만들어 진 것이다.

 

아이들의 선배의 선배의 선배의 선배가 바로 아이들이 혐오하는 어른들의 전형이다. 비리를 저지른 어른들의 후배의 후배의 후배의 후배가 바로 아이들이 아무 말 없이 복종하고 있는 1년 선배이다. 선후배 관계로 이어지는 살아있는 유기체가 어른들이 만든 세상이다. 뱀의 꼬리에 있는 아이들이 뱀의 흉측한 얼굴을 보고 못생기고 징그럽다고 말하지만 꼬리에서부터 뼈마디 하나씩 타고 올라가다 보면 어느새 자신들이 뱀의 얼굴이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이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하면서 자발적으로 선후배 관계를 맺기 때문에 선후배 관계를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래서 선후배 관계라는 바이러스가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하면서 한국의 사회체제를 감염시키고 사람들을 병들게 한다. 아이들은 선후배 관계가 한국을 해석하는 비밀의 열쇠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비밀의 열쇠를 몰랐기 때문에 한국의 문제를 해결하는 답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자발적으로 맺은 선후배 관계는 자발적으로 거부할 수 있다. 선후배 관계를 바꾸는 문제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한국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일본의 선후배 관계가 우리와 비슷하다. 그래서 일부는 선진국인 일본의 예를 들어가면서 선후배 관계가 문제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본은 사무라이 정신이 지배하고 있는 기형적인 나라이다. 사무라이 정신을 보지 않고 선후배 관계만 비교하여 우리나라가 문제없다고 주장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선배(先輩), 후배(後輩)는 일본식 한자어로 일제시대에 도입된 것이다. 근대식 학교를 일본이 세우면서 자연스럽게 이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식민지인 한국의 상류층들이 사무라이와 같은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는 것을 절대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무라이 정신을 한국인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다. 대신 계급에 대한 복종을 우선시 하는 선후배 관계는 한국인을 쉽게 지배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기 때문에 일본의 시스템을 그대로 한국에 적용했다. 선후배 관계는 일본의 잔재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일제강점기 35년간 일본의 장점은 가르쳐 주지 않고 단점만 가르쳐 주었다. 일본은 한국에 남은 마지막 호랑이를 이렇게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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