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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결정론

by 금퐁당 작은 연못 2020.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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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보다 더 무서운 것은 친일파와 그 아류인 군부 30년 정권이 남긴 문화이다. 식민지 주민을 양성하기 위한 복종문화와 군사 독재자의 명령에 따르게 사람들을 조련하는 문화가 살아 있다. 그 결과 한국은 군기잡는 나라가 되었다.

 

문화는 '어떤 집단의 구성원이 지닌 사유, 정보교환, 행동, 생활 등 그 집단에서 습득하여 계승해 온 양식'이라고 사전에서 정의하고 있는데 너무 복잡하다. 더 간단한 정의는 '한 민족이나 사회의 삶의 전반적인 모습'이다.

 

박근혜가 선진국은 문화강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말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 선진국은 인간 관계의 선진화를 실현한 문화강국이다. 이러한 문화를 만들기 위해 많은 피를 흘렸고 직위나 직종 때문에 서로 무시하기 않기에 대학가지 않고 빵을 굽거나 자동차를 수리해도 당당하게 살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조상이 우리에게 문화유산을 남겨주었다. 그 속에 인간 관계도 포함되어 있다. 선배와 후배, 직장상사와 부하직원, 부자와 가난한 자, 상급기관과 하급기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가 선진화되었는지 의문이다. 박근혜가 이 문화유산을 후손에게 물려주자고 하는데 끔찍하다.

 

정권교체는 기본적으로 문화를 인정한 상태에서 1% 사이의 권력교체라고 보면 정확하다. 좌파를 대표한다는 소수의 정당들이 있지만 이들이 권력을 잡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정말 좌파인지 의심스럽다. 좌파였다가 극우가 된 김문수, 이재오도 있고, 좌파 내부의 인간관계가 기대와 달리 수직적 관계라는 것도 좌파답지 않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99%를 움직일 수 있는 철학, 비전, 정책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는 것은 실망스럽다.

 

철학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의된다. 세상을 보는 눈, 사람을 보는 눈으로 해석하면 쉽겠다. 사람을 어떻게 볼 것인가 혹은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철학이다.

 

한국은 철저한 수직적 계급사회이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계급사회에 길들여 진다. 군인처럼 교복을 입고 명찰을 달고 선배는 하느님과 동기동창이 된다. 한국인의 철학, 즉 사람을 보는 관점은 인간을 존중의 대상이 아니라 계급, 성적, 직위에 의한 차별의 대상으로 본다. 전쟁시나 군대에서 적용할 인간관계를 학교에서 가르치는데도 좌우파 상관없이 침묵해 왔다.

 

한국 문화의 특징을 인간관계의 계급화로 정의할 수 있는데 시야를 넓혀 조직 단위로 보면 패거리 문화로 규정할 수 있다. 사람들은 고등학교, 대학교의 패거리 문화 속에서 이성을 잃고 지역주의를 완성시켰다. 99%를 위한 조직간의 협조란 기대할 수 없다. 박정희는 99%를 분열시켜 놓은 현재의 지역주의 체제 구축에 절대적으로 기여했다.

 

조직간 패거리 싸움의 선봉은 법조인이다. 동문회 모임에 거들먹거리며 얼굴을 내밀며 말도 안되는 동문의 요구를 들어준다. 'TK 동문회 모임에 참여하는 법조인'이 동문회에 가지 않고 집에 돌아가 가족들과 즐겁게 저녁을 함께 먹을 때 한국의 미래는 밝아질 것이다.

 

선진국은 훌륭한 지도자를 우리만큼 그리워하지 않는다. 99%가 강하기 때문에 누가 집권해도 99%를 주인으로 모신다. 이것이 선진국과의 결정적인 문화차이다. 기본 철학에 따라 99% 중심적 사고를 선택할 지 아니면 우리처럼 1% 중심적 생각을 할지 정해진다. 한국인은 1%가 되기 위해 대학입시에 올인한다. 개천에서 용나기를 기대하고, 지방에도 서울대를 만들기 원하고, 1%가 되기 위한 패자 부활전만 꿈꾼다. 99%가 당당하게 주인으로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전혀 고민하지 않는다.

 

한국의 문화는 99%에게 최악의 조건이다. 인간관계는 수직적 계급관계, 조직은 패거리 문화, 사고는 1% 중심이다. 김구가 소원한 문화강대국을 만들려면 기존의 문화는 절대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99%의 입장에서 볼 때 조상이 물려준 문화를 계승할 특별한 이유는 없다. 아이들도 자살율, 이혼율, 출산율이 최악의 결과를 보이고 있는 어른들의 문화를 물려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제까지 이렇게 중요한 문화가 대선에서 전혀 이슈가 되지 않았다는 것은 1%의 전략적 성공이었다. 그들은 99%에게 문화는 공연이고 문화상품권이라고 홍보해 왔다. 문화가 바뀌면 같은 민주주의라도 그 모습이 완전히 달라진다. 문화는 알맹이고 제도는 껍질이다. 경제, 복지보다 문화가 이번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었으면 한다.

 

정권교체보다 중요한 것은 문화교체이다. 1% 중심 세상에서 99%가 이제까지 해 왔던 것처럼 지도자를 숭배하거나 비판하는 수준에 머물지 아니면 99% 중심 세상에서 스스로 주인에 올라갈 방법을 찾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작은 날개짓을 찾을지 정해야 한다. 99%1%가 복지라는 이름아래 동정하듯 던져주는 지켜지지도 않을 공약을 기대할 필요없다.

 

99%1%에게 해방이후 구축된 민주체제에서 충분한 기회를 주었으며 기다릴만큼 기다렸다. 이제 문화 전쟁을 시작할 때도 되었다. 보수는 문화 계승으로 한 편에 서고, 진보는 문화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전략을 짜서 공격해야 한다. 보수와 진보의 경계선은 문화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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